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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토픽이슈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4,700km 캐나다 자전거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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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첫 날부터 쭉 뻗은 평지와 완만한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며 진짜 여행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캐나다의 대자연속에서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여행을 하고있는 내 모습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기쁨도 잠시얼마정도를 달렸을까출발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조금씩 도로 상태도 나빠지고 어떤 구간에선 자전거가 지나다닐 갓길이 아예 없어지는 바람에 하루종일 바짝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아댔다게다가 엄청난 크기의 트럭들이 시속 100km의 속도로 지나갈때마다 불어오는 후폭풍이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자전거 여행객인 나를 위협했다.


 이래저래 지체되어 첫 목적지에 저녁 9시가 되서야 도착했다첫 날 밤을 지낼 캠핑장으로 향하는데 그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바람에 길을 잃어 한참동안이나 마을 안을 이리 저리 헤매었다.

 종이 지도에 의존해 길을 찾던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르겠다고 판단했다숫기가 없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도 우물 쭈물 대답도 잘 못하던 내가 용기내어 길거리를 걸어가시던 한 아저씨께 다가가 제일 가까운 캠핑장이 어디 있는지 여쭤보았다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길을 해메던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저씨께서는 그러지 말고 자기네 집 뒷마당에서 하루 묵고 가는게 낫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다낯선 이로부터의 호의가 익숙치 않았던 나는 아저씨를 반신반의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맥주까지 얻어마시며 자전거 여행 이야기부터 아저씨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까지 여러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마치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처럼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필 아저씨는 35년 전 아내분과 함께 그리스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마을 안에서 근 30년간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셨다다음 날 아침 아저씨께선 나를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해 아침을 챙겨주셨다짧은 시간동안 나에게 정이 들었는지 아저씨께서는 내가 마을을 떠날 때 눈시울을 붉히시기까지하며 아쉬운 내색을 하셨다.


 이렇게 길을 잃고 해메던 나를 거두어 주었던 필 아저씨를 시작으로 페리사운드의 에릭 아저씨와 안드레아 아주머니웹우드의 드웨인 아저씨 등 이외에도 2달여 간 수많은 현지인분들께 도움을 받았다길거리에서 만난 꼬질 꼬질한 차림의 낯선 이에게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더구나 그 대가로 그저 다치지 말고 여행을 무사히 마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여행은 정말 놀랍다.

 이렇게 좋은 인연들과 행복한 일들만 일어나길 바랬지만 2달이라는 긴 여행기간동안 물론 몸 고생마음 고생도 많이 했다좁은 도로를 지나다가 트럭에 치일 뻔한 적은 예사였다겁에 질려 페달을 밟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벌벌 떨려서 고속도로 중간에서 히치하이킹으로 트럭을 얻어타 이동한 날도 있었다.

 


하루는 온타리오 주의 작은 마을에서 텐트 칠 곳을 찾아 해메이다 블랙베어를 마주치기도 했다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였다.

 아주 심각했던 썬더스톰을 멋도 모르고 자전거에 올라 돌파해보려다가 바로 옆으로 내리치는 번개들에 놀라 정말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페달을 밟은 적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큰 산맥이라 불리우는 록키산맥을 젊음의 패기 하나만으로 무리하게 자전거로만 넘고나서 무릎이 아프도록 시려와 3일동안 꼼짝 못한 적도 있었다현실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였다.


 거대한 대자연과의 만남 못지않게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휴식하면서나 도로를 달리면서 다른 자전거 여행객들을 포함해 길거리의 행인들까지 자연스럽게 여러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 2년동안 자전거 여행 중인 프랑스 친구와 마음이 맞아 2~3일 정도 같이 달리기도 하고 캐나다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나와 같은 한국인 자전거 여행객을 마주쳐 같이 달린 적도 있었다프랑스 뿐만 아니라 미국일본독일아일랜드 등 전세계에서 온 자전거 여행객들을 도로 위에서 마주쳤다세계 여행이 따로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애완견과 함께 도보로 캐나다를 횡단하고 있는 어마무시한 아저씨와도 마주쳤다어떤 이들은 내 여행 이야기를 듣고 돈과 가지고 있던 음식들을 건내주기도했다. 2달동안 매일 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땀 흘리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것이 단지 나 혼자 달리는 것만이 아님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필연적으로 부딪히고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정신적체력적 한계에 이르러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운명처럼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나에게 호의를 베풀고 도와주었던 그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여행이 끝난 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이제는 소통에 있어서 열려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여행 중 낯선 이들이 말을 걸어오면 의심과 불신에 둘러 쌓여 피하려고만 했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나를 발견한다또 외국인 앞에만서면 심장이 벌렁거려 말 한마디 던져보지도 못하던 내가 어느새 그 사람의 출신이나 피부색에 상관없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큰 자신감도 얻게되었다. 

 나는 자전거 여행이 내 마음 속 닫혀있던 세상을 향하는 문을 활짝 열게해준 열쇠와도 같다고 생각한다누구보다 더 뜨거운 여름 방학을 만들어준 이 여행이 나는 참 고맙게 느껴진다.

 


하루 하루 먹을 것과 잘 곳을 걱정하며 살아 남아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그렇게 고생했는데 언젠가 다시 떠나고 싶다.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면서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라는 격언을 읽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언젠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달리며 내 인생이라는 책의 페이지들을 새롭게 채워나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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